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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2023)리뷰 (삼부구성, 오해와이해, 재생)

mercyall 2026. 8. 31. 19:37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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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은 동일한 사건을 세 개의 시점으로 반복하는 삼부구성(triptych narrative) 방식으로 설계된 영화입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중반부까지 이 영화가 뭘 말하려는 건지 전혀 몰랐습니다. 불편하고 이질적인 감각만 계속 남았는데, 나중에 그게 의도였다는 걸 알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오해를 설계한 구조 — 왜 세 번 반복하는가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1부에서 완전히 엄마인 사오리의 시선에 이입되었습니다. 선생님 호리는 뭔가 태평해 보였고, 학교 측은 제 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한 것 같았습니다. 판에 박힌 사과 멘트를 반복하면서 진짜로 반성을 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갔습니다. 그 감정은 꽤 강했습니다.

    영화가 흘러가면서 저도 '의도에 넘어갔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의 삼부구성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처럼 진실 자체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방식이 아닙니다. 「라쇼몽」에서 같은 사건이 반복될 때 어느 화자의 묘사가 옳은지 알 수 없는 것과 달리, 「괴물」에는 명백한 정답이 있습니다. 1부와 2부의 시선은 틀렸고, 3부에서야 감정적 진실이 드러납니다. 오해를 경유해서 이해에 이르게 만드는 구조인 것이죠.

    각본을 쓴 사카모토 유지의 선택이 여기서 빛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데뷔작 「환상의 빛」 이후 약 30년 만에 타인이 쓴 각본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삼부구성이란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세 번 보여주는 서사 구조로, 관객이 매번 새로운 정보를 얻으며 이전 해석을 수정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영화는 이 구조 덕분에 관객 스스로를 편견의 공모자로 만듭니다.

    제목이 「괴물」인 만큼, 처음에는 괴물이 누구인지를 계속 찾게 됩니다. 그 답을 찾으려는 욕구 자체가 사실은 이 영화가 비판하는 시선과 같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저도 보는 내내 아이들이 나오는데 이상하게 불편하고 이질감이 들었는데, 그게 저 자신도 의도에 넘어간 상태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 사오리는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하지만 차 안에서 아이에게 건네는 말, "그냥 평범한 가정을 꾸리면 돼"라는 말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그녀는 알지 못합니다. 흰 선 바깥으로 나가면 지옥이라는 장난스러운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한 말이 상처가 되는 구조, 그게 이 영화가 말하는 감정적 재난의 실체입니다. 사오리가 코미디언 흉내를 내는 장면과 학교에서 요리를 괴롭히던 아이가 똑같은 흉내를 내는 장면이 병치되는 순간, 저는 등이 서늘해졌습니다.

    • 1부(사오리 시점): 선생님이 가해자처럼 보이도록 설계된 시선
    • 2부(호리 시점): 호리 역시 무의식적 편견의 가해자임이 드러남
    • 3부(미나토 시점): 두 아이의 실제 감정과 관계가 비로소 공개됨
    • 프롤로그(요리 시점): 유일하게 요리의 시선이 담긴 짧은 단서
    요약: 「괴물」의 삼부구성은 관객을 오해의 공모자로 만들기 위해 설계된 구조이며, 사랑조차 편견의 언어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재생을 원했던 아이들 — 엔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호리 선생님과 요리, 그리고 교장 선생님은 겉으로 보기엔 전혀 다른 인물 같지만 저는 이 셋이 사실상 하나의 궤적 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호리는 편모 슬하에서 자라며 사회의 편견을 몸으로 겪은 인물인데, 그러면서도 사오리에게 "싱글맘 가정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습니다. 자신이 당한 것을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투사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투사(projection)란 자신이 억압한 감정이나 경험을 타인에게 적용하는 심리 기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상처받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현상입니다.

    대학 시절 제가 겪었던 일이 이 대목에서 계속 겹쳐 보였습니다. 저는 어색함 때문에 약간 거리를 두었을 뿐인데, 상대방은 그것을 무시로 받아들였습니다. 나중에 직접 사과도 했고 잘 지내보자는 말도 나눴는데, 그 다음 날 제 학교와 주소를 안다는 제3자의 카톡이 왔습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상처받았다면 단둘이 있을 때 말했어야 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동시에 그 심정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호리 선생님에게 이상하게 마음이 갔던 건 그 경험 때문이었을 겁니다. 나도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라는 의문이 호리의 얼굴에서 보였습니다.

    요리는 아버지에게 "돼지 뇌를 이식한 괴물"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듣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그렇게 믿어버립니다. 이 자기 낙인(self-stigma)은 타인이 붙인 이름을 내면화해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요리가 불을 지른 건 아버지의 재생을 바라는 행위였습니다. 불로 태워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믿음, 이건 요리 자신의 재생에 대한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대로의 자신은 살 수 없으니,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겁니다. 저는 이 장면이 요리 혼자 밤 호숫가에 서 있는 장면보다 훨씬 더 외롭게 느껴졌습니다.

    엔딩 장면에 대해서는 감독 본인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출처: BFI Sight and Sound). 미나토 역 아역배우가 꿈에서 두 아이가 죽는 장면을 꾸고 편지를 보내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직접 "죽은 게 아니니까 마음껏 기뻐하며 연기해도 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개인적으로 그 장면을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폭풍이 끝난 뒤 긴 통로를 지나 햇살 속으로 나오는 시각적 묘사는 산도(産道), 즉 태어나는 통로를 너무 노골적으로 연상시킵니다. 그것이 실제 재생인지, 다른 형태의 해방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의도를 밝혔다고 해서 그 해석이 유일한 정답이 되는 건 아닙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는 요리가 말하는 "정말이야, 다행이다"입니다. 다시 태어난 게 아니라는 미나토의 말에 요리가 그렇게 반응하는 것, 이것이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이전의 요리였다면 지금 이대로의 자신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 감정의 변화가 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온 서사의 도착점입니다. 「괴물」이 2023년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건 바로 이 구조의 완성도 때문이라고 봅니다(출처: Festival de Cannes 공식 사이트).

    요약: 요리가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다행"이라고 말하는 순간, 영화는 재생을 바라던 아이가 지금 이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진짜 결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괴물」에서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요?

    A. 특정 인물 한 명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제목 「괴물」은 영화 초반 요리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 전체를 보고 나면 괴물이란 두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시선 전체, 그리고 그 시선에 쉽게 동조하게 되는 관객 자신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도 영화를 보는 내내 그 함정에 빠져 있었습니다.


    Q. 「괴물」 엔딩은 해피엔딩인가요, 새드엔딩인가요?

    A.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두 아이가 살아있는 것으로 의도했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하지만 감독 스스로도 이 해방감에 어른들은 동참하지 못했다는 의문을 남기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해피엔딩으로 받아들이든 아니든, 어른들이 그 순간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핵심적인 질문일 수 있습니다.


    Q. 「괴물」과 「라쇼몽」의 구조적 차이가 뭔가요?

    A. 「라쇼몽」은 여러 시점이 충돌하면서 진실 자체를 알 수 없다는 인식론적 질문을 던집니다. 반면 「괴물」에는 명확한 감정적 진실이 있고, 1부와 2부는 그 진실을 가리기 위한 오해의 통로로 기능합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목적의 구조입니다.


    Q. 호리 선생님과 요리가 닮았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A. 영화 안에서 두 인물은 여러 방식으로 겹칩니다. 한쪽 신발만 신는 장면, 미나토를 향한 감정을 글쓰기에 숨기는 행동, 이름의 라임(호리/요리)까지 일치합니다. 저는 호리가 미나토를 만나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요리처럼 보였습니다. 세상의 편견 속에서 자신을 교정당하며 살아온 사람이 어떤 어른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결론

    「괴물」은 처음 봤을 때 내용은 알겠는데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는 영화였습니다. 해석을 찾아보고 나서야 차츰 이해가 갔고, 두 번째로 봤을 때는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설계 방식이기도 합니다. 관객을 처음부터 오해하게 만들어 놓고, 마지막에 그 오해를 직면하게 합니다.

    저는 여전히 엔딩 장면을 감독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이는 쪽입니다. 두 아이가 실제로 살아서 뛰어나왔는지보다, 요리가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다행"이라고 말하게 된 그 감정의 이동이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불편하게 다가왔다면, 그건 영화가 잘 만들어진 증거일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볼 생각이 있다면 1부를 볼 때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한 번 의식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youtu.be/TwJnwjdbS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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