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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마을의 푸펠 리뷰(별을 보는 용기, 현실의 벽, 어른의 꿈)

by mercyall 2026. 6. 29.

솔직히 저는 그림책과 애니메이션이 이게 저한테 이렇게 꽂힐 줄은 몰랐습니다. 굴뚝 마을의 푸펠은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읽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하늘을 날고 싶다고 했던 제가, 지금은 로또 1등이 꿈이 됐다는 걸 문득 깨달았거든요. 언제부터 위를 보지 않고 아래만 보게 된 걸까요.

별을 보는 용기 — 올려다보는 것조차 잊은 우리에게

굴뚝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릅니다. 연기가 워낙 빽빽하게 덮여 있으니 올려다볼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거죠. 저는 이 설정을 보면서 엄마랑 언니와 함께 옥상에 누워 별을 바라보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본 밤하늘이 정말 아름다웠는데, 지금 저는 그 별을 마지막으로 언제 올려다봤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 핵심적으로 쓰이는 개념이 바로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가까운 집단 압력입니다. 여기서 가스라이팅이란 사회적 다수가 반복적으로 "그런 건 없어", "거짓말이야"라고 말함으로써 개인이 자신의 눈으로 본 진실조차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억압을 뜻합니다. 루비치의 아버지 브루노는 별을 직접 보고 돌아왔지만 마을 전체에게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게 단순한 판타지 설정이 아니라는 게 이 이야기의 무서운 지점입니다.

저는 높은 곳을 무서워합니다. 그런데도 굴뚝 위에서 별을 보려는 루비치를 보면서, 무섭다는 이유로 애초에 올라가 볼 생각조차 안 했던 제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용기는 두렵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두려워도 올라가는 행동이라는 걸 루비치가 몸으로 보여줍니다.

  • 굴뚝 마을의 연기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상식과 편견이 쌓인 사회 구조의 은유
  • 브루노의 말 "끝까지 믿는 거야, 비록 혼자가 된다고 해도"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
  • 올려다보는 행위 자체가 이 마을에서는 이단적 행동으로 여겨진다는 점이 현실과 겹침

요약: 별을 보는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렵더라도 위를 올려다보는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현실의 벽 — 이단 심문관이 된 사회, 그리고 저도 그 안에 있습니다

"바깥은 없어", "튀는 건 하지 마", "현실을 보지 않으면 어른이 될 수 없어." 이 말들이 작품 속 굴뚝 마을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그런데 읽으면서 내내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도 주변 누군가가 엉뚱한 꿈을 말할 때 속으로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심리학에서 말하는 '동조 압력(conformity pressur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집단의 의견과 다를 때 개인이 자신의 판단을 스스로 억누르고 다수를 따르게 되는 현상입니다. 솔로몬 애쉬(Solomon Asch)의 동조 실험에서는 명백히 틀린 답임에도 불구하고 집단 압력 앞에서 75% 이상의 참여자가 최소 한 번은 틀린 답을 말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출처: Simply Psychology, Asch Conformity Experiment). 굴뚝 마을은 이 실험의 연장선입니다.

작품 속에서 저를 가장 오래 붙잡은 인물은 사실 루비치도 푸펠도 아니었습니다. 별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이단으로 몰릴까 두려워 포기해 버렸다가, 마지막에야 용기를 내는 인물들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루비치와 푸펠을 응원하면서도 실제 상황이었다면 저도 그럴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저들의 말과 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화면 밖에서 응원하는 건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굴뚝 마을의 논리를 저도 어느 순간부터 내면화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이 남았습니다. 꿈을 말하면 비웃음 당하고, 행동하면 공격받는 구조. 작가 니시노 아키히로는 이걸 가리켜 현대 사회의 풍자라고 직접 말했습니다.

요약: 굴뚝 마을의 이단 심문관은 먼 세계의 악당이 아니라, 동조 압력에 길들여진 우리 자신일 수 있습니다.

어른의 꿈 — 쓰레기 사람이 주인공인 이유

작가는 주인공을 왜 굳이 '쓰레기 사람'으로 설정했을까요. 후기에서 그 답을 직접 밝힙니다. 꿈을 꾸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모두가 현실과 타협하며 버린 것들을 아직 쥐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요. 저는 이 문장을 읽고 잠깐 멈췄습니다. 그럼 저는 그걸 언제 버렸을까.

어린 시절 제 꿈은 하늘을 나는 것이었습니다. 폭신한 구름을 이불 삼아 누워보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꿈은 로또 1등입니다.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인지와는 별개로, 꿈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게 솔직히 웃기면서도 좀 씁쓸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저는 루비치와 함께 기억에 남는 조연들에게도 시선이 갔습니다. 모두가 배척하는 브루노와 푸펠에게 일자리를 준 단 씨, 겉은 거칠지만 결국 용기를 낸 인물들, 바보 같은 아들과 아빠를 조용히 응원하는 루비치 엄마.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루비치와 푸펠의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이 이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습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뜻합니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정립한 이 개념에 따르면,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어려운 환경에서도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Self-Efficacy). 브루노가 루비치에게 남긴 말, "끝까지 믿는 거야"는 결국 자기 효능감의 언어입니다.

  • 쓰레기 사람 푸펠 = 어른이 되면서 버린 꿈과 순수함의 상징
  • 루비치의 조연들 = 혼자로는 버티기 힘든 세상에서 버팀목이 되는 작은 연대의 힘
  • 브루노의 유언 = 자기 효능감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방식으로서의 신뢰

요약: 쓰레기 사람이 주인공인 이유는,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버린 것들의 목록을 그가 아직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굴뚝 마을의 푸펠을 다 읽고 나서 저는 오랜만에 밤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마침 구름이 많아서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올려다보는 동작 자체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무언가를 건드렸습니다. 꿈이 로또 1등이 된 어른이 됐다고 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었으면 합니다.

이 작품이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했다면, 한 번쯤 다시 펼쳐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어른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아프게 읽히는 이야기입니다. 루비치의 아버지 브루노가 남긴 말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한 번쯤 자기 자신에게 대입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믿는 거야, 비록 혼자가 된다고 해도.

참고: https://r25.jp/articles/92888531473013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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