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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키아누 리브스가 허당 천사 역할을 한다는 것 자체를 믿지 못했습니다. 매트릭스의 네오, 존 윅의 그 남자가 전등 문자 담당 천사라니. 그런데 영화를 보는 순간 그 의심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저처럼 한때 생계를 위해 몸을 갈아넣어 본 사람에게 꽤 깊이 박히는 이야기라는 것도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가브리엘이라는 천사, 그리고 사소함의 역설
영화 속 천사 가브리엘의 보직은 '전등 문자 담당'입니다. 여기서 전등 문자 담당이란 운전 중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 사고를 막는 역할을 뜻합니다. 그리피스 언덕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오늘도 묵묵히 세 명의 목숨을 구한 가브리엘이지만, 정작 그 자신은 쓰나미 담당, 눈사태 담당, 음악 영감 담당 천사들을 부러워하며 영혼 담당 부서로의 보직 변경을 신청합니다. 그리고 단번에 거절당하죠.
제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시절, 딱 이 심리였습니다. 마트 계산대에서 물건을 찍고, 새벽엔 배달 심부름을 뛰고,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이런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하루를 실제로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겨우 깨달았습니다.
가브리엘이 하루에 구한 세 명의 목숨이 그 증거입니다. 필라테스를 검색하던 남자, 레시피를 보던 여자, 그리고 문자를 보내며 운전하던 아지. 이 세 사람 모두 가브리엘이라는 '사소한' 보직 덕분에 오늘을 살아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졸업 연설에서 언급한 "연결되지 않은 점들이 나중에 이어진다(connecting the dots)"는 개념처럼, 당장 눈앞의 일이 하찮아 보여도 그 안에 쌓이는 것들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출처: Stanford News).
- 전등 문자 담당: 운전 중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경고를 보내 사고를 예방하는 보직
- 영혼 담당 부서: 가브리엘이 동경하는,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여기는 보직
- 가브리엘이 하루에 구한 목숨: 최소 세 명 — 사소함이 곧 생명줄이었음
아지의 삶, 그리고 신분교환이 벌어지기까지
아지는 낮엔 마트에서 일하고, 밤엔 파트타임을 뛰고, 새벽엔 자기 차 안에서 쪽잠을 잡니다. 그 차마저 견인당하는 날, 그의 바닥이 어디인지 드러납니다. 제가 학비를 벌겠다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제 상황이 이것과 겹쳐 보여서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 불편했습니다. 몸이 버텨주지 못해 병원비로 번 돈을 다 써본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아지의 하루가 단순한 영화 설정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지가 제프의 대저택에 심부름을 하러 갔다가 공석이 된 비서직에 지원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 전환점입니다. 비서직(Personal Assistant)이란 고용주의 일정, 재정, 대인관계를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역할로, 신뢰(Trust)가 직무의 절대적 전제 조건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지는 법인 카드(Corporate Card)를 건네받고, 좋아하는 여자와 고급 레스토랑 데이트까지 하게 됩니다. 법인 카드란 회사나 고용주가 업무비 처리를 위해 직원에게 위임한 카드로, 사적 사용이 발각되면 즉각적인 신뢰 붕괴로 이어집니다.
결국 아지는 그 카드를 개인 결제에 씁니다. 21세기 초연결 사회에서 비밀 결제는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걸 고백하고 도게자까지 해봤지만 레드카드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저도 그 장면에서 공감이 됐습니다. 힘겨운 상황에서 한순간의 선택이 쌓아온 것을 무너뜨리는 경험, 작은 규모지만 저도 해봤거든요.
신분교환 이후 — 제프의 삶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가브리엘이 아지에게 미래를 보여주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웃기면서도 씁쓸한 구간입니다. 천사가 인간에게 미래 비전(Future Vision)을 보여줄 때, 일반적으로는 희망을 심어주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여기서 미래 비전이란 당사자의 선택에 따라 분기될 수 있는 가능성의 시뮬레이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가브리엘이 보여준 미래는 희망이 아니라 절망으로 가득했고, 아지는 오히려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가브리엘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실수를 저지릅니다. 아지와 제프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역할 이행(Role Transition)이 아니라 완전한 현실 체인지였습니다. 역할 이행이란 개인이 사회적으로 점유하는 지위와 그에 따른 행동 패턴 전체가 교체되는 것을 뜻합니다. 아지는 제프의 삶에서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고액을 승인할 수 있는 행복을 맛봤고, 당연히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장면에서 든 생각은 달랐습니다. 제프의 삶이 아무리 풍요로워도,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게 과연 행복한 삶일까 싶었습니다. 경제적 빈곤(Economic Deprivation)이라는 개념, 즉 기본적 생존 자원의 결핍이 인간의 정서와 판단력에 미치는 영향은 실제로 학계에서도 꾸준히 연구되어 왔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하지만 물질적 조건이 채워진다고 해서 관계의 공허함이 채워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저는 병원 침대에서 긴 시간을 보내면서 알게 됐습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이 영화여야 했던 이유
처음에 저는 이 캐스팅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키아누 리브스와 아지즈 안사리의 조합이라니. 그런데 막상 보고 나면, 이 영화에서 가브리엘 역할은 키아누 리브스가 아니면 절반도 안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트릭스(The Matrix), 존 윅(John Wick), 콘스탄틴(Constantine)에서 구축된 그의 진중하고 초월적인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그가 허당 천사 역할을 할 때의 낙차가 훨씬 크게 웃깁니다. 제가 영화를 보는 내내 빵빵 터진 건 바로 이 필모그래피(Filmography) 기반의 이미지 낙차 효과 때문이었습니다. 필모그래피란 한 배우가 출연한 작품 목록 전체를 뜻하는데, 이 영화는 그 필모그래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메타적 캐스팅입니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아지즈 안사리(Aziz Ansari)가 이 영화에서 주연 배우이자 각본가이자 감독을 모두 맡았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직접 쓴 이야기를 자신이 연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캐릭터의 감정선에 작가 본인의 시선이 깊이 녹아 있다는 뜻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작품들은 디테일이 다릅니다. 아지가 고급 재킷을 빌려 입고 법인 카드를 손에 쥐던 순간의 표정이 그냥 연기가 아니라 진짜 감각처럼 느껴졌던 건, 아마 그 이유 때문일 겁니다.
복잡한 반전이나 무거운 메시지보다, 마음 편히 웃으면서도 보고 나서 뭔가 남는 코미디를 찾고 있다면 이 영화가 딱 맞는 선택이라고 봅니다. 특히 오랫동안 키아누 리브스를 좋아해 온 분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키아누 리브스 영화인데 액션 영화인가요?
A. 아닙니다. 이 영화는 순수한 코미디 드라마입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천사 가브리엘 역할을 맡아 허당 연기를 선보이는 작품으로, 기존 액션 이미지와의 낙차가 오히려 웃음 포인트입니다. 액션을 기대하고 보시면 당황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Q. 아지즈 안사리가 감독이기도 하다고요?
A. 맞습니다. 아지즈 안사리는 이 영화에서 주연 배우이면서 각본과 감독까지 모두 맡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아지의 감정선이 상당히 촘촘하고 현실적입니다.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생계의 무게를 실제로 아는 사람이 쓴 이야기라는 느낌이 분명히 납니다.
Q. 신분교환 영화인데 결말이 해피엔딩인가요?
A. 완전한 결말은 직접 확인해보시면 좋습니다. 다만 영화의 전반적인 톤은 따뜻하고 가볍습니다. 무거운 반전보다는 잔잔한 마무리를 선호하는 분께 잘 맞는 작품입니다.
Q. 미국식 코미디라 공감이 안 될 수도 있지 않나요?
A. 문화적 차이는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아지가 겪는 다중 아르바이트, 차에서 쪽잠, 신뢰를 잃는 순간의 감각 같은 것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울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제가 비슷한 상황을 겪어봐서인지, 저한테는 미국 영화라는 느낌보다 그냥 사람 이야기처럼 다가왔습니다.
결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가브리엘의 전등 문자 담당 보직을 생각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기록에 남지 않아도, 누군가의 오늘을 지탱하는 일이 있다는 것. 저도 몸이 망가질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던 시절에 그런 의미를 알았더라면 조금은 달랐을까 싶기도 합니다.
복잡한 생각 없이 주말 오후에 편하게 틀기 좋은 영화입니다. 단, 키아누 리브스의 기존 필모그래피를 조금이라도 알고 보면 웃음이 두 배가 됩니다. 먼저 매트릭스나 존 윅을 한 편 보고 나서 이 영화를 보시면 더욱 잘 맞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