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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른에게(공감,성장통,현실의 서른,영화와의간극)

mercyall 2026. 9. 30. 22:33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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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아홉 살의 저는 수첩에 이런 문장을 적어뒀었습니다. "서른엔 해외에서 일하고,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강아지랑 산책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 지금 그 수첩을 다시 꺼내보면 실소가 나옵니다. 현실은 그 어느 줄 하나 맞아떨어진 게 없거든요. 2017년 개봉한 영화 <나의 서른에게>는 바로 그 간극, 그러니까 서른이 되면 뭔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와 실제 서른이 들이미는 민낯 사이의 간극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서른이 되면 어른이 된다는 말, 저는 틀렸습니다

    일반적으로 서른이 넘으면 뭔가 성숙해지고, 척척 해내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서른을 넘기고 나서도 저는 여전히 아이 같고,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느낌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임야꾼의 서른 번째 생일 아침이 딱 그랬습니다. 오전 6시 반에 눈을 떠서 옷을 고르고, 메이크업을 마치고 분주하게 나서는 그 루틴이 특별히 달라진 건 없습니다. 생일이어도 세상은 그냥 굴러갑니다. 저도 스물아홉 마지막 날,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들으며 해돋이를 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일에 밀려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그렇게 서른은 아무 예고도 없이 지나가버렸습니다.

    발달심리학(developmental psychology)에서는 성인 초기(early adulthood)를 20대 초반부터 40세 전후까지로 봅니다. 여기서 성인 초기란 정체성 확립과 친밀감 형성이라는 과제가 동시에 진행되는, 심리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시기를 의미합니다. 즉 서른이 됐다고 정체성이 자동으로 완성되는 게 아닙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 따르면, 이 시기의 혼란감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발달 단계상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서른인데 아직도?"라는 시선을 받을 때 그 혼란은 배가 됩니다. 영화 속 버스 안에서 임야꾼에게 나이를 대뜸 묻고 성별까지 깎아내리는 장면이 유독 불편하게 느껴진 건, 저도 비슷한 말을 들어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 서른이 되면 어른이 된다는 건 통념일 뿐, 실제로는 발달심리학적으로도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가 이어집니다.

    영화 속 성장통, 저는 얼마나 공감했나

    영화에서 임야꾼이 하루 동안 겪는 일들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나도 저랬는데" 하고 중얼거린 장면들이 있습니다. 진상 고객을 마주했을 때 속으로만 소리를 지르는 장면, 그리고 집주인에게 예고도 없이 쫓겨나는 장면이 특히 그랬습니다.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그 묘한 감각이 오히려 몰입을 높여줬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임야꾼의 하루가 저보다 훨씬 바쁩니다. 저는 아침잠이 많아서 머리는 전날 감고, 세수도 가끔 건너뛰고, 직장에 여성분들만 있다 보니 화장도 거의 안 합니다. 옷은 자전거로 출근하니 활동 편한 걸로, 가방은 뭐든 들어가면 그만입니다. 아침은 간편식을 직장에서 틈틈이 먹고, 점심은 직장 식사가 잘 나오니 걱정이 없습니다. 화장품은 스킨로션으로 끝내고, 집은 가족이랑 같이 삽니다.

    그러고 보면 영화가 그리는 서른의 성장통(growing pains)은 꽤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을 전제로 합니다. 성장통이란 여기서 단순한 신체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역할과 기대 사이의 불일치에서 오는 심리적 마찰을 뜻합니다. 혼자 살고, 남자친구가 있고, 커리어 압박이 있는 서른. 저처럼 가족과 함께 살고 남자친구도 없고 직급도 사원인 서른은 또 다른 결의 혼란 속에 있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가 제게 의미 있었던 건, 형식이 다를 뿐 "뭔가 이루어진 게 없다"는 감각 자체는 정확히 같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나보다 낫네 싶으면서도, 결국 우리가 같은 불안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영화입니다.

    요약: 영화 속 성장통의 형식은 달라도, "이루어진 게 없다"는 감각은 서른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감정입니다.

    현실의 서른, 영화처럼 전환점이 오는가

    영화에서 임야꾼은 쫓겨난 집 대신 황상아라는 여자의 빈집에 한 달간 머물게 되고, 그 공간이 자신을 돌아보는 전환점이 됩니다. 새로 들어간 낯선 집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고, 그곳에서 발견한 일기장 한 권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영화적으로는 설득력 있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현실에서 집을 갑자기 잃으면 그게 전환점이 되기보다는 그냥 피곤한 일이 하나 더 생기는 것에 가깝습니다. 새로운 집이 금방 구해지지도 않고, 오히려 그게 전환점이 된 적도 없습니다. 언제든 돌아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상사를 둔 적도 없고, 문제가 생기면 "웃기보다는 견뎌내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게 저의 현실이었습니다.

    레질리언스(resilience), 즉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역경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는 심리적 힘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레질리언스가 높으면 위기가 전환점이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출처: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의 자료를 보면 회복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적 지지망(social support network)과 환경적 조건이 함께 작용해야 가능합니다. 사회적 지지망이란 위기 상황에서 심리적·물질적으로 받쳐줄 수 있는 관계들의 총합을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 속 임야꾼의 전환이 아름답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그 서사가 꽤 많은 조건을 전제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서른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살짝 아쉬운 지점입니다.

    영화가 제시하는 전환점의 조건들

    영화 속에서 전환점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했던 요소들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 낯선 공간에 일시적으로 머물 수 있는 기회 (황상아의 빈집)
    • 자신과 비슷하지만 다른 삶을 살아온 타인의 존재 (황상아의 일기장)
    • 잠깐이라도 일상 루틴에서 강제로 분리되는 계기
    • 치매 아버지와의 시간처럼, 속도를 늦추는 사건
    요약: 영화의 전환점은 설득력 있지만, 현실의 서른에게는 그 전환이 가능한 조건 자체가 갖춰지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서른이 지나도 무감각해지는 나이, 그게 나쁜 건 아닐 수도

    일반적으로 서른은 특별한 나이로 여겨집니다. 영화도, 노래도, 에세이도 죄다 서른을 소재로 삼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서른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서른이 넘고 나서 한 해, 두 해가 더 지나니까 나이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무감각해졌습니다.

    이게 포기인지 성숙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출근은 싫고 퇴근과 휴일만 손꼽아 기다리고, 꿈은 로또 맞아서 돈 많은 백수가 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체력은 예전 같지 않고, 없던 병도 생기고, 인간관계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주위 친구들은 다 유부녀가 되어서 만나면 대화가 자녀 교육 얘기로 채워지는데, 저한테는 별나라 얘기처럼 들립니다.

    자아 정체감(ego ident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에릭슨(Erikson)이 제시한 이 개념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일관된 감각을 의미합니다. 서른 언저리가 혼란스러운 건 이 자아 정체감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외부의 기대와 내면의 현실이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그 충돌에 무뎌지는 것도 하나의 적응 방식입니다. 감각이 무뎌지는 게 꼭 나쁜 신호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영화 속 황상아가 아르바이트로 살면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며 후회 없이 살아온 서른이었다면, 저의 서른은 그냥 살아지는 서른에 가깝습니다. 그게 열등한 서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영화가 말하는 "꿈과 행복과 마주하는 서른"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서사인지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살아봤으니까 조심스럽게 의문을 달고 싶습니다.

    요약: 서른에 대한 무감각은 포기가 아니라 적응일 수 있고, 영화가 제시하는 서사가 모두의 서른에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나의 서른에게>는 어떤 분들이 보면 좋은가요?

    A. 서른을 앞뒀거나 막 지난 분들이라면 공감 포인트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영화는 20대를 타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가 30대가 훨씬 지나서 봤는데도 오히려 지나온 서른을 다시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 더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커리어, 관계, 주거 중 하나라도 불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Q. 서른이 되면 심리적으로 뭔가 달라지나요?

    A. 일반적으로 서른이 되면 성숙해질 거라고 알려져 있지만, 발달심리학적으로 보면 서른은 자아 정체감이 완성되는 시점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적 역할 기대와 내면의 현실이 가장 충돌하는 시기입니다. 제 경험상 서른 이후에도 혼란은 계속됐고, 다만 그 혼란에 조금 무뎌지는 것이 변화의 전부였습니다.


    Q. 서른에 이룬 게 없다는 느낌, 다들 그런 건가요?

    A. 많은 분들이 비슷하게 느끼는 감각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30대 초반의 고용률과 자산 형성 속도는 세대 간 격차가 커지고 있어, 이전 세대와 같은 기준으로 "이루었다"는 감각을 느끼기 점점 어려운 환경이 됐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이 감각은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영화처럼 서른에 인생 전환점을 만들 수 있을까요?

    A. 가능한 분들도 있겠지만, 제 경험상 전환점은 의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회적 지지망이나 환경적 조건이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작동합니다. 영화 속 설정처럼 빈집에 한 달간 머물 기회가 생기거나,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누군가의 흔적을 마주하는 경험이 현실에서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환점이 없다고 해서 잘못 사는 게 아닙니다.


    결론

    영화 <나의 서른에게>는 서른이라는 나이를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나이가 가진 무게를 담백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제가 직접 서른을 지나보니, 영화가 그린 혼란과 공허함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모든 서른이 전환점과 함께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서른을 앞두고 계신다면 기대치를 낮추라는 말이 아니라, 기대와 다른 현실이 와도 그게 실패가 아니라는 걸 미리 알았으면 합니다. 저처럼 아무 일 없이 서른이 지나가버려도, 그게 나름의 서른입니다. 영화가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youtu.be/2JbwSVRcxu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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