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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있는 두 개의 세계(가족 돌봄, 수어 소통, 불효의 재정의)

by mercyall 2026. 7. 3.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의 약 90%는 청인(聽人)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그 역도 성립합니다. 즉, 농인 부모의 자녀 대다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틀었을 때 저는 그냥 잔잔한 가족극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20분이 채 안 돼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가족 돌봄: 아이가 보호자가 되는 순간

영화 속 주인공이 처음부터 작은 어른처럼 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농인(聾人) 부모, 즉 청각 장애를 가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소리를 듣는 자녀를 CODA(Children of Deaf Adults)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CODA란 단순히 '농인 부모의 자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통역자이자 중재자 역할을 떠안아 온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까지 함께 담긴 개념입니다.

갓난아기의 울음은 생존 신호입니다. 부모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건, 아이의 가장 원초적인 언어가 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이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사랑으로 낳겠다고 결심했지만, 경제적 지원도 없고 조부모의 반대도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준비는 얼마나 됐을까 싶었거든요. 사랑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으니까요.

그 의문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더 복잡해집니다. 주인공이 사춘기를 맞이하고, 친구 집에 초대받은 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비슷한 경험을 해봤는데, 사춘기 때 "우리 집이 좀 다르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은 정말 조용하게, 하지만 깊게 상처를 남깁니다. 남의 시선이 두렵고, 조금이라도 다르면 배척당할까 봐 위축되는 그 감각은 어디서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 CODA는 어릴 때부터 병원·학교·관공서에서 부모를 대신해 통역하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이 과정에서 또래보다 이른 책임감을 내면화하게 되며, 감정 표현보다 기능적 역할이 앞서게 됩니다
  • 국내에서도 장애인 가정의 비장애 자녀를 대상으로 한 심리 지원 체계는 아직 미비한 상태입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요약: CODA는 단순한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돌봄과 통역의 역할을 떠안은 존재이며, 그 무게는 사춘기에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수어 소통: 손이 닿아야 마음이 닿는다

이 영화에서 수어(手語)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닙니다. 수어란 손과 표정, 몸짓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시각적 언어 체계로, 음성 언어와 동등한 문법 구조를 가진 독립된 언어입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도쿄로 올라와 농아인 서클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그는 부모와의 관계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누군가와 대화합니다.

흥미로운 건, 그 서클의 구성원들이 "할 말은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주인공의 부모님은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생활 속 많은 갈등을 우회해 왔습니다. 반면 농아인 서클에서 만난 사람들은 수어로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논쟁도 합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언어의 형태보다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이 관계의 질을 결정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기차 안 장면입니다. 모자(母子)가 수어로 긴 대화를 나누는데, 그 모습이 평범한 모자의 잡담처럼 보입니다. 수어 표현 중 "좋아", "싫어" 같은 기본 감정 어휘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수어를 완전한 자연 언어로 공식 인정하고 있습니다(출처: WHO). 이 단순한 단어들이 모자 사이에서 얼마나 늦게, 얼마나 소중하게 교환됐을지를 생각하면 장면이 다르게 보입니다.

제가 직접 그 기차 장면을 여러 번 돌려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수어라는 시각적 언어가 오히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도구가 되는 역설, 음성이 없는 대화가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조용히 증명합니다.

요약: 수어는 이 영화에서 장애 극복의 수단이 아니라, 오랫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이 비로소 건너오는 통로로 기능합니다.

불효의 재정의: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는 쪽

저는 어릴 때 치매를 앓으신 할머니 때문에 집안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치매'라는 병명조차 제대로 쓰이지 않았고, 동네에서는 그냥 "노망났다"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어디론가 가시려는 걸 붙잡았을 때 저를 노려보던 눈, 그리고 왜 그렇게 아팠는지 모르겠는 그 주먹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저는 그 시절 내내 빨리 어른이 되어서 여기를 벗어나야겠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이 "평범하게 봐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목이 좀 메었습니다.

주인공은 결국 도쿄로 떠납니다. 그런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사춘기에 귀가를 알리기 위해 전구를 켰던 습관처럼, 그는 도쿄에서도 농인들의 세계와 연결된 채로 삽니다. 역할 동일시(role identity)의 측면에서, 이는 오랜 기간 돌봄 제공자 위치에 있던 사람이 그 역할에서 자유로워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역할 동일시란 자신이 맡아온 사회적 기능이 자아 개념의 일부로 통합되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기차 장면에서 아들이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먼저 말합니다. 그걸 보면서 제가 경험상 느낀 건, 저는 엄마에게 한 번도 먼저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어릴 때 이야기를 꺼내면 원망만 쏟아냈고, 사과를 받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지 제가 먼저 건네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영화 앞에서 효자나 효녀는 없는 것 같습니다.

  • 엄마가 "사람들 앞에서 수어로 오래 이야기한 게 기뻤다"고 말하는 장면은, 효도가 거창할 필요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 불효(不孝)는 하지 않은 것보다, 함께 있었지만 연결되지 못한 시간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쪽이 관계를 바꿉니다. 이 영화는 그 순서를 아들이 택하는 것으로 끝냅니다
요약: 불효의 반대는 효도가 아니라, 먼저 말을 건네는 용기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소박한 용기를 가장 긴 장면에 담았습니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제 경험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나는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이 자꾸 따라왔기 때문입니다. 돌봄의 부담, 소통의 단절, 그리고 관계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것이 거창한 제스처가 아니라 소소한 동행이라는 것. 이 세 가지를 이 영화는 설교 없이, 조용하게 전달합니다.

가족 중에 청각장애인이 있거나, 어릴 때 돌봄의 역할을 맡아온 경험이 있다면 특히 더 많은 장면이 걸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부모에게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라고 먼저 말한 게 언제인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본 다음 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별 말은 못 했지만, 그래도 먼저 건 것만으로도 조금 달랐습니다.

참고: https://youtu.be/_yuT3p44r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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