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말을 못 하게 된다면 하루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영화 <라이어 라이어>는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저는 처음에 '하루 정도야 뭐 어때' 싶었는데, 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에 기대며 사는지, 이 영화가 꽤 불편하게 찌릅니다.
거짓말이 습관이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솔직히 저도 거짓말을 안 해봤다고 말하면 그게 또 거짓말입니다. 제가 제일 많이 거짓말을 했던 대상은 엄마였습니다. 엄마가 불량식품을 극도로 싫어해서 용돈을 아예 안 주셨거든요. 그래서 준비물 가격을 실제보다 높게 불러 남는 돈으로 사탕을 사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허술한 수법인데, 당시엔 꽤 진지하게 실행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언니랑 저는 한 살 차이에 같은 학교를 다녔으니, 엄마가 준비물 가격을 다 꿰고 계셨을 게 뻔합니다. 그럼에도 그냥 모른 척하셨던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에 엄마는 일 때문에 늘 바쁘셨고, "다음에 같이 가자", "나중에 놀자"는 말을 자주 하셨지만 막상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엄마도 거짓말을 하니까 나도 해도 되지'라는 생각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사회인지이론(Social Learning Theory)에서는 이런 현상을 '모델링'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모델링이란 주변의 중요한 타인, 특히 부모나 권위자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배우는 과정을 말합니다. 아이가 거짓말을 배우는 경로가 의외로 가정 안에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 플레처 리드도 아들 맥스에게 늘 약속을 어기면서, 자신이 아들의 거짓말 학습 환경을 만들고 있었다는 걸 스스로는 전혀 몰랐습니다.
변호사 플레처의 하루, 솔직함이 무기가 될 때
영화의 주인공 플레처 리드는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입니다. 그의 성공 방정식은 단순합니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사실을 교묘하게 비틀고, 의뢰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법정에서의 이런 행위를 법률 용어로 변론 전략(Litigation Strategy)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유리한 해석을 끌어내는 기술인데, 플레처는 이 경계를 훨씬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거짓말을 못 하게 되자, 법정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됩니다. 판사 앞에서 재판 연기를 시도하지만 질문이 돌아오자 "예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고, 본인의 꼼수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저거 직장에서 하면 정말 큰일 나겠다'였습니다.
저도 직장 생활 중 비슷한 상황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상사의 재미없는 농담에 억지로 웃어줬고, 제 생각과 달라도 일단 동조하는 제스처를 했습니다. "힘든 거 없어요?"라는 질문에 '직원 좀 더 뽑아주시면 안 됩니까'라는 속마음을 꾹 누르고 "괜찮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잘릴까 봐요. 그게 전부입니다. 플레처가 법정에서 하는 것과 사실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재판 연기 꼼수 → 판사 질문에 결국 자백
- 의뢰인을 위한 변론 전략이 솔직함 앞에서 무너짐
- 신호 위반 적발 시 경찰에게도 솔직하게 진술
- 법정 외 일상에서도 사회적 거짓말이 연쇄적으로 무너짐
아이의 소원 하나가 어른을 흔든다
맥스가 생일 촛불을 끄며 빈 소원은 단순했습니다. "아빠가 하루만 거짓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그냥 웃자고 넣은 설정 같지만, 저는 이 부분에서 꽤 오래 멈췄습니다. 아이가 아빠한테 바라는 게 값비싼 선물도, 더 많은 시간도 아니라 "진짜 말"이었다는 게 묘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플레처는 아들에게 "어른들은 다 거짓말을 한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맥스가 대답합니다. "아빠는 거짓말을 하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잖아요." 제가 직접 이 대사를 들었을 때, 잠깐 정말로 뜨끔했습니다. 거짓말이 나를 보호해 준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걸 지켜보는 사람 눈에는 그냥 불행해 보이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인지 부조화란 자신의 실제 감정이나 가치관과 겉으로 드러내는 행동 사이의 불일치에서 오는 심리적 긴장 상태를 말합니다. 플레처가 끊임없이 성공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표정 어딘가가 공허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거짓말을 못 하게 되면서, 그는 오히려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거짓말은 행복해지려고 하는 건데, 정말 그럴까
병원에서 근무할 때 환자분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질문이 "저 나을 수 있을까요?"였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원래대로 완전히 돌아오기는 어렵지만, 꾸준히 하면 회복이 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병세가 오래됐거나 연령에 따라 회복이 제한적인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전했다가 나중에 "그때 그렇게 말했잖아요"라고 오시면 할 말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의 거짓말은 선의의 거짓말(White Lie)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선의의 거짓말이란 상대방을 보호하거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사실을 완전히 전달하지 않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출처: 미국심리학회(APA)의 연구에 따르면, 일상에서 거짓말 빈도를 줄인 그룹은 정신 건강 수준과 대인관계 만족도가 유의미하게 높아졌다고 보고합니다. 선의라는 포장지가 붙어 있어도, 거짓말은 결국 관계에 피로를 쌓는다는 뜻입니다.
플레처는 거짓말을 하면서 정작 자신이 행복하지 않았고, 솔직해지는 과정에서 오히려 진심과 진실을 되찾습니다. 퇴사할 때 "부모님이 편찮으셔서요"라며 멀쩡한 부모님을 아프게 만들고, 자기소개서는 소설처럼 쓰고. 저도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게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출처: Psychology Today에서 지적하듯, 습관적 자기기만은 장기적으로 자존감을 갉아먹는 구조를 만듭니다. 영화 속 플레처의 공허함이 결국 그 증거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라이어 라이어 영화 실제로 볼 만한가요?
A. 짐 캐리 특유의 과장된 연기 때문에 가볍게 보이지만, 의외로 뒤통수를 한 대 맞는 느낌이 납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각자 다른 지점에서 찌릿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저는 웃다가 중간에 멈추는 구간이 꽤 있었습니다.
Q. 거짓말 습관, 어른이 돼서도 고칠 수 있나요?
A.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심리학에서는 거짓말 습관이 어린 시절의 모델링과 회피 학습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작은 상황부터 솔직하게 말하는 연습을 반복하면 점진적으로 변화가 가능합니다. 단, 혼자 고치려 하기보다 신뢰하는 관계 안에서 연습하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Q. 직장에서 솔직하게 말했다가 불이익 받으면 어떻게 하나요?
A. 이건 저도 계속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솔직함과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은 사실 다른 개념입니다. 모든 걸 다 말하는 게 솔직함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적절한 시점에 진심으로 전달하는 것이 진짜 솔직함에 가깝습니다. 플레처도 결국 아들에게 진심을 전했을 때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Q. 선의의 거짓말은 괜찮은 거 아닌가요?
A.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단기적으로 상대방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반복되면 상대방이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빼앗게 됩니다. 미국심리학회(APA) 연구에서도 거짓말 빈도를 줄인 쪽이 관계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선의라도 습관이 되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결론
거짓말을 못 하는 하루가 그냥 불편한 코미디일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플레처가 거짓말을 잃은 하루 동안 잃은 것들보다 얻은 것들이 더 컸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아들의 소원 하나에서 시작됐다는 점이 한참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저도 제 경험을 돌아보면,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한 시간들이 동시에 가장 공허했던 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완전히 솔직하게 사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만큼은 한 겹씩 벗겨나가는 연습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한 편이 그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