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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체벌이 어느 정도는 훈육의 일부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4등>을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1등만 인정받는 구조 안에서 아이의 몸에 새겨지는 멍자국을, 엄마는 알면서도 모른 척합니다. 그 장면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체벌문화 — 때리면 강해진다는 믿음의 실체
영화 속 수영 코치 광수는 과거 아시아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과 신기록을 동시에 거머쥔 인물입니다. 타고난 신체 능력과 감각을 가졌지만, 훈련은 빠지고 술자리와 도박을 전전했던 전형적인 '재능형' 선수였죠. 그런 그가 16년이 지나 구민체육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영 강사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받은 방식 그대로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체벌(體罰), 즉 신체적 고통을 훈육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체벌이란 잘못된 행동을 교정한다는 명목으로 신체에 물리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의미하며, 국제아동권리협약에서는 이를 명백한 아동 권리 침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출처: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자로 손등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알림장을 다 썼는데도 맞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은 자리를 자주 비웠고, 돌아왔을 때 저를 본보기로 삼아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엔 어려서 그런 판단을 못 했고, 집에 가서 엄마한테 말했더니 "네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맞은 거 아니겠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이 지금도 서운합니다.
영화 속 준호가 훈련 중 맞은 멍자국을 동생에게 들키고, 엄마 정에가 밤에 조용히 그 몸을 확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뭔가 말하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침묵이, 제가 경험한 엄마의 반응과 겹쳐 보였습니다. 알면서 모른 척하는 것, 어쩌면 그게 더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국내 아동학대 통계를 보면, 체벌을 정당한 훈육이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여전히 낮지 않습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아동학대 가해자의 상당수가 부모나 교사 등 보호자로, 훈육 목적이라는 명목으로 신체 폭력을 행사한 사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광수는 몽둥이로 100대를 때리는 걸 아무렇지 않게 말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회고하기도 합니다. "선배들은 맞고 있는데 나는 사무실에서 떡볶이 먹고 있었다. 그때 더 강하게 키웠으면 내가 더 성공했을 텐데." 제가 볼 때 이 대사가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입니다. 폭력을 성공의 조건으로 내면화한 사람이, 다음 세대를 가르치고 있는 장면이니까요.
- 체벌은 국제아동권리협약 기준으로 명백한 아동 권리 침해에 해당합니다.
- 피해를 입은 아이가 가해자의 방식을 내면화해 다시 가르치는 악순환이 영화의 핵심 구조입니다.
- 보호자가 폭력을 인지하고도 침묵하는 것은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 훈육 명목의 체벌이 실제로는 권위 유지 수단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열 — 1등을 향한 열망이 아이를 지우는 방식
영화를 보면서 제가 계속 마음에 걸렸던 건 준호가 정말 수영을 하고 싶은 걸까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레인이 구분된 경계를 벗어나 혼자 물속을 유영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등수도, 기록도, 코치도 없는 그 장면에서 준호는 처음으로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준호의 엄마 정에는 교육열(敎育熱)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구현하는 인물입니다. 교육열이란 자녀의 학업이나 과외 활동에 강한 열의를 쏟는 현상을 말하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것이 종종 아이의 의사나 감정보다 결과와 등수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정에는 준호가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섭다고 말합니다. 이 대사는 과장이 아닙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심리는 생각보다 흔합니다.
저도 초등학교 4학년 때 반에서 1등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기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당시 직장에서 해고되어 집에 계셨는데, 갑자기 제 성적에 관심을 보이시면서 문제집을 풀게 하고 조금만 틀려도 "앞으로 어떻게 벌어먹고 살 거냐"며 혼내셨습니다. 텔레비전도 마음대로 못 봤습니다. 저는 그때 1등이 되는 게 좋은 건지, 아니면 더 많은 걸 요구받는 출발선에 서는 건지 헷갈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 1등은 기쁨이 아니라 압박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광수가 준호에게 말합니다. "내가 볼 때 너는 할 수 있다." 이 말은 격려처럼 들리지만, 그 직전에 몽둥이로 때린 다음에 나오는 말입니다. 동기부여(動機附與), 즉 어떤 행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내적 또는 외적 자극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체벌을 통한 동기부여는 공포와 복종을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진짜 의욕을 키우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스포츠 심리학 연구들은 처벌 중심의 코칭 방식이 단기 성과는 낼 수 있어도 장기적 자기효능감을 낮춘다고 지적합니다. 쉽게 말해, 때려서 이긴 아이가 더 강해지는 게 아니라, 더 빨리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준호 아빠 영훈이 광수를 찾아가 "다시 때리면 기사 쓰겠다"고 경고하는 장면은, 16년 전 광수 자신이 감독에게 맞고 기자에게 제보하던 장면과 정확히 겹칩니다. 그 기자가 이제는 자기 아들 문제로 또 다른 광수를 찾아갔다는 구조가,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라고 제는 생각합니다. 1등을 향한 열망이 세대를 건너 되풀이된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는 계속 수단이 된다는 것.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4등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가요?
A. 직접적인 실화는 아니지만, 한국 엘리트 스포츠 훈련 현장의 구조적 문제와 교육열을 사실적으로 반영한 작품입니다. 2015년 개봉 당시 많은 관객이 "우리 주변 이야기 같다"고 공감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제가 본 소감으로는 픽션이지만 다큐보다 더 진짜 같았습니다.
Q. 체벌이 아이 훈련에 실제로 효과가 있나요?
A. 단기적으로 복종을 이끌어낼 수는 있지만,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처벌 중심 코칭이 장기적으로 자기효능감과 내적 동기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합니다. 공포로 움직이는 아이는 무대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체벌 없이도 훈련 효과를 낼 수 있는 긍정적 강화 방식이 현재 스포츠 교육계의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Q. 한국에서 아동 체벌은 지금도 합법인가요?
A. 2021년 민법 개정으로 부모의 자녀 체벌을 허용하던 '징계권' 조항이 삭제되었습니다. 학교 체벌은 이미 2011년 초·중등교육법 개정으로 금지되었고요. 법적으로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지만, 실제 인식 변화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Q. 영화에서 준호 엄마가 체벌을 알고도 왜 모른 척했나요?
A. 영화는 그 침묵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불편합니다. 제 해석으로는 메달이라는 결과가 아이의 상처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순간, 부모도 공범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준호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려고 저러나 싶어서,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결론
영화 4등이 불편한 이유는 악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광수는 자신이 당한 방식 그대로 가르칩니다. 정에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더 많은 걸 원합니다. 영훈은 16년 전 광수의 외침을 들었지만, 그 기억이 결국 자기 아들 문제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반복됩니다. 모두가 조금씩 가해자이고 피해자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오래 남았던 장면은 빈 수영장에서 준호가 혼자 유영하던 모습이었습니다. 레인을 무시하고, 등수도 없고, 시간도 재지 않는 그 물속에서 처음으로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수영 선수가 아니라 그냥 수영을 좋아하는 아이로서요. 아이가 자신의 속도로 물을 가를 수 있는 여유, 그것이 1등보다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여유를 어떻게 만들어줄 수 있을지, 이 영화가 그 물음을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