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자매 중 한 명이 더 많은 관심을 받을 때, 나머지는 괜찮은 척하는 법을 먼저 배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언니가 아프고 느리고 자주 울었던 탓에, 저는 일찍부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가 되는 게 익숙해져 버렸거든요. 2017년 영화 원더를 보면서 그 감각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안면 기형 장애를 가진 열 살 소년 어기의 이야기인데, 정작 제 마음을 가장 세게 건드린 건 어기의 누나 비아였습니다.
다중 시점 서사가 건드린 것들
<원더>는 안면 기형(craniofacial anomaly), 즉 두 개안면 기형을 갖고 태어난 어거스트, 별명 어기의 첫 학교생활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여기서 안면 기형이란 두개골과 얼굴뼈의 발달 이상으로 외형이 표준적인 범위를 크게 벗어난 상태를 말하며, 어기는 태어나서 10살이 되기까지 총 27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만큼 신체적 부담이 컸던 아이인데, 영화는 그 아이의 이야기만 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구성상 가장 의미 있다고 느낀 부분은 다중 시점 서사(multi-perspective narrative) 방식입니다. 이는 하나의 사건을 여러 인물의 시선으로 교차하며 보여주는 기법인데, <원더>는 어기뿐 아니라 누나 비아, 친구 잭, 비아의 친구 미란다의 시점을 각각 독립된 챕터로 구성합니다. 이렇게 시점이 바뀔 때마다 같은 사건이 전혀 다르게 보이더군요.
비아의 챕터가 특히 제 경험과 겹쳤습니다. 가족이 다 나가고 혼자 강아지한테 "오늘 내 하루가 어땠는지 아무도 묻지 않아"라고 털어놓는 장면은, 제가 직접 겪어본 감각이었습니다. 아프거나 잘한 걸 티 내고 싶지 않았던 습관, 도움을 청하는 게 어색해서 결국 혼자 병을 키워버린 경험까지. 저와 비아는 상황은 달랐지만 반응 방식이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반면 비아의 친구 미란다 챕터는 필요성에 대해 의견이 나뉠 수 있다고 봅니다. "비아의 친구까지 굳이 다룰 필요가 있냐"는 시각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미란다가 어기에게 선물한 우주 헬멧의 의미를 완성하는 데 그 챕터가 꼭 필요했습니다. 더 넓은 우주를 보라며 선물을 건넨 사람이, 정작 자신은 잘못된 방향으로 세계를 넓히려 했다는 아이러니는 미란다의 내면을 직접 보여줘야만 제대로 전달되니까요.
각 인물이 보여준 시선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점입니다. 어른들이 쉽게 단정 짓는 것과 달리, 아이들은 실수하고, 반성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사과합니다.
- 잭: 어른에게 떠밀려 어기와 친해졌지만, 결국 스스로 어기를 1픽 친구로 선택하게 됩니다. 할로윈에 뱉은 말 한 마디가 화를 불렀지만, 웹에서 먼저 사과를 건넵니다.
- 썸머: 영화 안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격언 "옳음보다 친절함을 선택하라"에 가장 가까운 행동을 한 인물입니다. 모두가 피할 때 조용히 다가온 아이죠.
- 샬롯: 쉴 새 없이 자기 얘기만 하지만, 처음부터 어기를 무시하지는 않았고 험담하는 친구에게 한 소리 합니다. 그냥 밥맛이라고만 볼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 줄리안: 극 중 유일하게 끝까지 어기를 괴롭히는 인물. 그런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줄리안의 부모님과 달리, 줄리안은 마지막에 사과 쪽지를 건넵니다.
편견과 친절 사이, 아이들이 어른보다 나은 것
영화에는 중간중간 격언이 등장합니다. "옳음보다 친절함을 선택하라"는 문장이 대표적인데, 이게 단순한 배경 장치가 아니라 각 인물의 행동 기준선으로 작동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인물은 한 명도 없습니다.
썸머는 가장 그 격언에 가깝게 행동하지만, 어기도 예외는 아닙니다. 과학 시험에서 잭에게 슬쩍 정답을 보여주는 장면, 저는 처음엔 그냥 귀엽게 봤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엄연히 커닝 방조입니다. 친절하긴 한데 방법이 잘못됐죠. 이런 허술함이 오히려 어기를 더 사람답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영화가 그걸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약간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너무 착한 나머지 흠을 찾으면 제가 나쁜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든다고 솔직히 말하고 싶습니다. 사건들이 비교적 쉽게 해결된다는 지적도 공감합니다. 현실에서 줄리안 같은 아이가 사과 쪽지를 보내는 경우는 드물고, 따돌림(bullying)이 그렇게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일도 많지 않으니까요. 여기서 따돌림이란 반복적인 권력 불균형을 바탕으로 한 의도적 괴롭힘을 뜻하며,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갈등과 명확히 구분합니다(출처: StopBullying.gov).
그럼에도 제가 이 영화를 높이 사는 이유는, 어른이 되면 편견을 깨는 것도, 사과하는 것도, 용서하는 것도 훨씬 어려워진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실수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단순하게 보여도, 그 단순함이 어른들 세계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고 나면 저 장면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공감 능력(empathy)과 관점 수용(perspective-taking)은 사실 아동기에 가장 활발하게 발달하는 능력입니다. 공감 능력이란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능력이고, 관점 수용은 자기 입장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시각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인지적 기술입니다. 발달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이 두 능력은 초등학교 시기에 결정적으로 형성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영화 속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빠르게 사과하고 용서하는 게 단지 영화적 설정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비아가 어기에게 "세상의 모든 일이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제 경험상 누나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용기 있는 말이었습니다. 마냥 보듬어주는 게 사랑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배웠거든요.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원더>는 몇 살 아이가 봐도 괜찮을까요?
A. 원작 소설이 초등 고학년을 주 독자층으로 쓰인 만큼, 10세 전후부터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안면 기형이라는 소재를 직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어린 아이와 함께 본다면 사전에 짧게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폭력 묘사가 거의 없고 전체적인 톤이 따뜻해서 가족 단위 관람에 무리가 없는 편입니다.
Q. 영화에서 제일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낀 부분이 있나요?
A. 저는 줄리안의 사과 장면이 그랬습니다. 현실에서 따돌림을 주도했던 아이가 자발적으로 쪽지를 남기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저도 그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 영화가 현실의 리포트가 아니라 바람직한 방향을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관점으로 보면, 그 장면이 가진 의미가 달라 보이기도 합니다.
Q. 비아(누나) 챕터가 따로 있다는 게 신기한데, 원작 소설도 이런 구성인가요?
A. 맞습니다. R.J. 팔라시오의 원작 소설 <원더>도 동일하게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챕터를 나눠 서술합니다. 영화가 소설의 다중 시점 구조를 충실히 따른 편인데, 영상으로 구현하면서 일부 챕터의 비중이 조정되기도 했습니다. 비아 챕터가 인상적이었다면 원작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Q. "옳음보다 친절함을 선택하라"는 말이 영화에서 왜 자꾸 나오나요?
A. 이 문장은 원작 소설에서도 핵심 주제어로 반복되는 격언입니다. 영화 안에서는 단순한 명언 소개가 아니라, 각 인물이 그 기준에 얼마나 가깝게 또는 멀게 행동하는지를 비추는 척도로 작동합니다. 썸머는 가장 가깝고, 줄리안은 가장 멀죠. 그 사이 어딘가에 나머지 인물들이 배치되는 방식이 꽤 정교하다고 느꼈습니다.
결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비아 생각을 했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게 버릇이 돼버린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저는 제 몸으로 먼저 알았거든요. 비아는 그 전에 가족들에게 솔직해질 기회를 얻었고, 저는 그게 부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했습니다.
<br"><원더>는 착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착해서 생기는 허점도 분명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다시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하나입니다. 어른이 되면 잘 안 되는 일들, 사과하고 용서하고 다시 다가가는 일을 아이들이 해내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꽤 오래 여운이 남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안면 기형, 따돌림, 형제간 감정, 공감 능력 발달 같은 주제에 관심이 생겼다면 원작 소설도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