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되고 나서 이 영화를 다시 봤더니, 전엔 그냥 웃겼던 장면들이 갑자기 가슴을 찔렀습니다. 언제 짤릴지 모르는 직장, 사내연애는 부담이고 연애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지는 요즘, 브리짓 존스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이 글은 영화 속 브리짓의 선택들을 좀 더 냉정하게 뜯어보고, 왜 이 이야기가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을 붙잡는지 저 나름의 시선으로 풀어봤습니다.32살 브리짓의 전략, 공감이 되는 이유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충효일기를 나눠줬습니다. 칸칸이 나뉜 그 일기장 맨 아래에는 생활수칙 같은 게 인쇄돼 있었고, 선생님은 조원 전원이 일기를 써오면 스티커를 주셨습니다. 스티커 10장을 모으면 피자를 사주신다고 했죠. 근데 저는 그게 정말 싫었습니다. 매일매일이 똑같이 지루한데 ..
만약 신이 당신에게 "해봐, 네가 한번 해봐"라고 자리를 내줬다면 — 과연 세상이 더 나아질까요? 브루스 올마이티는 2003년 짐 캐리 주연으로 개봉한 코미디 영화지만, 보고 나면 의외로 묵직한 질문이 남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웃다가 어느 순간 뚝 멈췄습니다. 주인공이 신을 향해 원망을 퍼붓는 장면이, 제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의 감정과 너무 닮아 있었거든요.신의 능력을 손에 쥔다면 — 자유의지의 벽브루스 놀란은 지역 뉴스 리포터입니다. 특종을 노리지만 매번 웃긴 분장이나 하고, 가장 얄미운 라이벌 에반의 뉴스가 황금 시간대를 차지하죠. 생방송 기회를 얻었지만 앵커 교체 소식에 멘털이 무너져 방송 사고를 치고 결국 해고됩니다. 그날 브루스는 거리에서 신을 향해 원망을 쏟아냅니다.그..
죄를 짓기도 전에 체포된다면, 그건 정의일까요 아니면 폭력일까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그 불편한 질문을 2002년에 이미 던졌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예능 프로그램에서 먼저 접했는데, 막상 영화 본편을 보고 나서 시스템의 논리가 생각보다 훨씬 허술하다는 걸 직접 확인하고 꽤 당황했습니다.프리크라임 시스템, 실제로 얼마나 완벽한가영화의 배경은 2054년 워싱턴 D.C.입니다. 이 도시에서는 프리크라임(Pre-Crime)이라는 시스템이 운용 중입니다. 여기서 프리크라임이란 살인이 발생하기 전에 범인을 미리 체포하는 예방적 치안 시스템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일어날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구금하는 구조입니다.이 시스템의 핵심은 세 명의 예지자(Precog)입니다. 예지자..
솔직히 저는 오래전부터 기억력이 좋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걸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마들렌 한 조각으로 잠겨 있던 과거의 문이 열리는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이야기입니다.프루스트 효과, 냄새 한 줄기가 열어젖히는 기억의 문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저는 어김없이 이야기꾼이 됩니다. "그때 거기서 네가 이런 말 했잖아"라고 하면 상대방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그걸 아직도 기억해?" 하고 묻거든요. 그러면 저는 웃으면서 "저는 원래 그래요"라고 넘기는데, 솔직히 이게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좋은 기억만 남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우개로 싹 밀어버리고 싶은 기억들도 같이 딸려 오거든요. 그 기억 때문에 지금도..
2002년 개봉 당시 일본 코난 극장판 사상 최고 흥행 수익을 6년간 유지한 작품이 있습니다. 저는 이 극장판을 처음 봤을 때 그냥 "재밌는 코난 게임 편"으로만 기억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보고는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2002년 작품이 지금의 현실을 이미 경고하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거든요.시대 선구: 2002년에 가상현실을 꺼낸 작품솔직히 저는 명탐정 코난을 계륵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워낙 에피소드가 길어지다 보니 질질 끌리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베이커가의 망령만큼은 예외입니다. 이 극장판은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이 작품의 중심 소재는 코쿤(COCON)이라는 완전 몰입형 가상현실 게임입니다. 여기서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이란 헤드셋이나 캡슐 ..
유치원 때였습니다. 저녁 6시쯤 좋아하는 만화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화면에 갑자기 뉴스 속보가 떴습니다. 비행기가 건물에 부딪혔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때 저는 만화를 못 보게 될까 봐 속상하기만 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날이 얼마나 큰 날이었는지 알게 됐고, 영화 레인오버미를 보면서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9.11 트라우마와 PTSD, 이 영화가 다루는 것레인오버미(Reign Over Me)는 2007년 마이크 바인더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로, 9.11 테러로 가족 전부를 잃은 찰리 파인먼(아담 샌들러)과 그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치과의사 앨런 존슨(돈 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코미디 이미지가 강한 아담 샌들러가 이렇게까지 무너진..